십년 가까운 세월.
결코 짧지 않은 인연이었습니다.
햇살 강한 날 길을 나설때면 그녀는
늘 내 몸에 붙어서 나를 지켜주었습니다.
해질녘부터는 매번 천대를 받곤 했으면서도
내가 손을 내밀면 거절하지 않고 언제나
내 몸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를 지겨워 해 본 적은 없습니다.
첫눈에 그녀를 내 것으로 지목한만큼
그녀에게 강한 애착이 있었으니까요.
會者定離
만남의 끝은 이별이라던가요?
마침내 그날이 오고 말았습니다.
이날이 올 줄 알았다면 차라리
그녀를 좀 쉬게 해주어야 했습니다.
좀 더 날렵한 년이 내 품을 파고 들던
올봄부터, 그녀의 자리가 휘청거렸을때
차라리 그때 그녀를 곱게 모셔두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녀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또 애틋한 마음도 생겨 비로봉을 밟을 때 그녀와 동행을 했고
향적봉을 그녀에게 의지해 올랐습니다.
그 휘황한 백색광선으로부터 내눈을 지켜주던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을 예견했을 터인데도
끝가지 늦춰 주었습니다, 그녀 최후의 순간을.
하산길이었습니다.
솔직히 귀찮았습니다.
배낭을 벗고 안경을 꺼내 쓴다는 게.
그러다 잠시 한눈을 팔았고
내 몸이 아주 짧은 순간 허공위로 솟나 싶더니
눈밭에 거꾸러지고 말았습니다.
허우적 거리고 눈더미에서 벗어났을 때
그녀의 실종을 알았습니다.
눈을 더듬었습니다.
그녀의 촉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는....
그녀는 이제 나와 더 이상 한 몸이 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심각한 골절상을 입은 그녀의 임종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부러진 다리.
그 다리를 두고 갈 수 없었습니다.
몇 번의 더듬이질 끝에 찾아내었고
저는 경건한 마음으로
그녀의 영정을 촬영해야 했습니다.
그녀를 앞으로도 오래 기억하고 싶은 세레모니였습니다.
아름다운 그녀를 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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