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삶의 입자들과 부딪치며 살아갑니다.
때로 입가에 잔미소를 짓게하는 일들.
때로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하는 현장.
아린 마음이 되게 만드는 모습.
(기분을 망치게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긴 굳이 하지 않기로 합니다.)
아주 작은 행복 한 알갱이와 작은 감동으로 삶이 지루하고 버겁다는 배부른 생각들은
한순간에 정리 되기도 합니다.
어느새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감동에 둔감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때마다
마주치는 작은 사건들이 고마운 것은 옷깃을 여미고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어제, 산행을 위해 늦지않게 집을 나섰습니다.
마을버스에서 군포행 버스로 옮겨타고 다시 산본역으로 옮겨가는 중이었습니다.
제법 날 선 찬바람이 도심을 헤집고 있었습니다.
토요일이다보니 늘 붐비던 중심상가는 한적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약속시간까지 한 시간도 더 남아서 느릿느릿 계단을 올랐습니다.
왼쪽에 남루한 옷차림의 여인이 조촐한 짐이 실린 카트를 앞에 놓고 뭔가에
골몰해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50대 중반? 후반?
노점상이군.
물건을 펼 마땅한 자리가 없던가보지?
그러다 그 여인옆을 스치며 흠칫, 발검음이 둔해지고 말았습니다.
그 여인의 손에는 한 권의 책이 들려있었고
책에 심취한 입가로 엷은 미소가 피어있었습니다.
책 읽는 기준을 행색으로 따지려는 것이 아닙니다만
사는 게 각박해지고 버거워지면 가까워하기엔 너무 먼 것이 책이라는,
나이 들어갈수록 책과 거리를 두게 되더라는 경험(?)이 만든 선입견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땟국에 절어있고 머리칼도 멋대로 흐트러진, 단정치 못한 매무새였지만
나는 이미 계단의 끝에 올라서서 흥미 이상의 시선으로 그 여인의 뒷모습을 내려다 보다가
몇초쯤 망설인 끝에 카메라를 꺼냈고 미리 노출을 조정한 뒤 살금살금 내려가 앵글을 잡았습니다.
하산길 식당에서 담소를 하던 중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우리님 한분이
자신의 독서량에 대해 이야기할때, 참 부러워 하는 모습이면서도 저 건 '인쇄매체 중독'이라고
농을 치던 그 순간에도 그 여인의 모습을 생각했었습니다.
계단위의 광경이 다시 또 생각납니다.
혹 그 여인에게 누가 될까 많이 망설이다가 어제 일을 발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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