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늘인 짧은 이야기

내 사랑을 고백합니다

낮은담☆ 2008. 1. 24. 20:27

내 사랑을 고백합니다.

 

 

 

제목을 그렇게 달아 놓으니 슬슬 입질이 땡기시던가요?

이를 어쩝니까.

님들을 낚아 버렸으니요.  히히

 

사랑..참 아름답고 후끈달게 하는  회춘의 묘약이요 불로장생의 영약이죠.

인간에게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랑의 대상을 찾을 수 있더군요.

 

연인.

친구.

혈육.

애완동물.

술.

돈.

이런식으로 헤아리려면 향적봉행 곤돌라에 오르는 걸 포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사랑을 4단계로 분류를 했던가요?

아무 생각없이 입력시켰다가  30년만에 꺼내려 하니 아리송송합니다만  대충  애로스 /

스톨케 / 필로/ 아가페/ 뭐 그런 순서였지 싶습니다.

(제 기억에 문제가 있다 싶으면 바로 지적을 해주셔야 합니다.  안그러면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제 헛소리가 올바른 걸로 오해하시게 되니까요.)

 

남녀간의 사랑인 애로스, 혈육간의 사랑인 스톨케, 지식을 향한 필로, 그리고 신이

인간에게 주시는 아가페라는 주석까지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내가 맛을 좀 밝히는 편인데,  먹거리를 탐하고  폼나는 입성에 군침 흘리는 이딴 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일텐데 어디에  끼워야 할지가 좀 궁금합니다.

 

 

자, 이제 소문 내고 싶은 사랑고백을 해야겠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사랑인지도 몰랐습니다.

철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중2때였던가?

아님 한 해쯤 뒤였던가.

 

정확한 시기가  중요하지 않으니 대충 그 무렵으로 해둡니다.

저와 같은 국민학교(저는 초등학교는 학부모의 자격으로 가본 기억만 있습니다) 다니며

가깝게 지내던 규식이라는, 우리집 건너편에서 제과점과 다방을 하는 아이의 집에서 였어요.

 

그 녀석이 시키는대로 따라해보긴 했지만 어른들이 돈버려가며 그것을 즐기는 이유를

도대체 알 수 없었습니다.

달콤하기도 하고 쓰기도 하고...

 

솔직히 싸구려 화장품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향긋한 냄새때문에 그 녀석의 집에서 얼쩡거리는

일이 잦아졌어요.

뭐든지,  해본 놈이 잘하는 거라잖습니까?

 

그 어린 것이 제법 맛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내가 좀 별났었나봐요.

일찍 되바라졌던지...

 

그래요.

내가 커피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한 나이가 겨우 열 대 여섯살 무렵이니 매서웁게 조숙했던 겁니다.

이 대목에서는 좀 시건방을 떨면서 말해도 될 것 같은 게,  그 시절에는  커피가 저~~기 서울사람들이나

마시는 귀한 것이었으니까요.

[서울 사람들이 숭늉처럼 마신다는 것]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것도 몇 년 더 지나서의 일이거든요.

 

커피의 맛은 물론 끓이는 물의 온도와 끓이는 시간이 좌우한다고 믿던 시절이 그때였나봐요.

아무나 커피를 뽑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죠.

커피맛을 잘 내는 주방장들이 시시한 요리집 숙수들 못지않게 고급인력이었다면 이해에 도움이 되실려나요?

 

그런데 내가, 친구 잘만난 덕에 그 비법을 배웠다는 거 아닙니까. 흐흐

물론 그 사건이 후에 가끔씩 쏠쏠한 용돈 벌이를 시켜 주었지만 그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어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다방.

게다가 커피를 맛나게 끓이는 고수들이 강호의 도처에 깔리기 시작했으니까요.

 

 

이쯤, 내 커피 인생의 중대한 변환점이 피해가지 않았어요.

조국의 부름을 받은 겁니다.

 

오뉴월의 개처럼 혓바닥 빼물고 헉헉 거리며 훈련소를 거치고 온갖 희안한 훈련과정을 이겨내며 그 해 여름을

나는 동안  불행하게도 커피와 생이별을 하고 말았던 겁니다.

 

물론 어쩌다 커피를 먹을 수 있는 행운의 럭키 세븐-오랫동안 행운과 �키는 다른 뜻일 줄 알았다니까요-이

일곱개쯤 겹치는 날이면 C 레이션 박스에 들어있는 인스턴트 커피를 찔끔거릴 수 있었어요.

 

궁하니까 그 맛도  제법 그럴듯 하더라구요.

그러다 제대를 하고...

 

가끔 사무치는 그리움때문에 탈영의 티읕자까지는 생각해보던  그 악전고투의 시기가 지나고 우아한

직장인이 되어 다시 마시게된 커피의 세계는  발전을 향한 꾸준한 진보가 있었어요.

 

남비에 물을 끓이다 원두를 넣고 잽싸게 융으로 만든 망에 찌거기를 걸러내거나 주전자를 이용해 커피를

끓이던 원시적인 커피 추출이 제법 진화해 있더라는 겁니다.

 

도구를 이용한 사이폰식 추출이 대세였으니까요.

물론 맛도 진화해 있었구요.

 

그즈음 내가 살짝 맛이 가게 되고 급기야 잘나가던 직장 하루 아침에 때려 치우게 됩니다.

두가지 이유가 있었죠.

선친의 병구완이 그 하나요 풍요로운 정서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그 둘이었죠.

 

십 오년쯤?

그 세월동안의 인생사가 주제가 아니니 오늘은 그 부분 건너 뜁니다.

 

일 년에 연극 한편 관람하기도 어려운 시골이었으니 원두커피 또한 어쩌다의 나들이에나 한번 맛볼 수 있을뿐.

인스턴트에 완벽하게 길들여져 가기 시작한 거죠.

다방에 가서 '저는 양촌리 레시피로 주세요'라고 스스럼 없이 말하는 단계가지 이르를 만큼요.

 

십 오년.

한 인간 개조하는데 충분한 시간입니다.

커피뿐만 아니라 음악도 포기하고 살았으니까요.

미치도록 끈적 거리는 재즈, 불루스와 헤어져 있던 시간이고  올드팝과 담을 쌓을 수 밖에 없던 시절을

거치는  동안 감성까지 녹슬고 말았지 뭡니까.

 

이런 말 들어보셨어요?

열 살 남짓에 형성된 미각은 중년이 되면 다시 찾아가게 된다는 말을요.

 

쉰 을 넘기게 되면서 그  맛이 애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손쉽게 원두를 구해 먹을 수 있을만큼 선진화된 조국이 되었음을 알게되니 뛰어들듯 원두의 품에

안기고 싶어지더라는 겁니다.

 

이제 제 고백의 거의 마무리 단계입니다.

마는, 지금부터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의 핵심입니다.

헛소리가 길었다는 말이죠, 뭐. 히히

 

 

커피의 맛에 심취하게 되면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지 혹시 아십니까?

왜... 음식 잘만드는 사모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 밖에 나가서 뭘 맛있게 못먹는 악성 질병을

앓게 된다는 겁니다.

 

요즘 지천에 깔린 게 커피숍입니다.

가끔은 커피샵도 눈에 띄긴 하더라만요.

 

종이컵에 에스프레소 머신이라는 고압 수증기로 커피를 추출해내는 최첨단 기계를 이용해서 커피를

찍어 내는 그런 점포들 말입니다.

 

무슨 벅스..무슨 빈스..

그맛에 길들여지면 또 그맛을 예찬하겠지만 나는 그맛을 하수의 맛이라고 폄하해 버립니다.

 

도대체 품종조차 알 수 없게 브랜드라는 고급스러운 이름으로 잡다한 통들이 마구 뒤섞인  원두의 정체...

말 나온 김에 조금만 파고 들어갑니다.

 

우리가 개 이름 부르듯 쉽게 부르는 불루마운틴의 가격을 아십니까?

제가 즐겨먹는 케냐 AA라는 품종도 제법 품위있는 커피 대접을 받는데 생두 1키로에 13,000원 남짓합니다.

이 생두 볶아내면 전문점에서 200 그램당 만 육칠천원 더하기 택배비입니다.

 생두 1키로 잘 볶으면 800그램 정도가 나오니 생두 곱하기 열을 한 값이 원두의 가격이 되는 거죠.

 

그런데..커피의 귀족이라는 불루마운틴 생두 1키로의 가격이 10만원 이상 호가 하는 경우가 많으니 결국

원두 200그램에 10만원, 또는 그 이상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내가 한 번 마시기 위해서는 20그램의 원두가 필요합니다.

10만원, 또는 그 이상의 가격으로 겨우 열 번을 먹을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2~3만원대에 팔아 대는 그 흔한 불루마운틴은?

아..내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흐흐

 

말이 샜는데요.

결론적으로 아주 값싸고(질 좋은?) 커피를 금속성 그라인더에 갈아서 고온, 고압으로 밀어낸

진한커피를 다시 뜨거운 증기에 희석 시켜 내놓는 현대적인 커피.

 

고객에 대한 배려로 종이컵 위에 덧 입혀준 마분지때문에 온도감각을 잃고 홀짝 거렸다가 입천장

뒤집어지게 만드는 딱끈딱끈한 커피.

 

내가 좀 모자라서 겠지만 그런 커피에는 도저히 적응할 수 없어서 집밖에서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땐

차라리 십오년 넘게 익숙해진  한국인의 발명품인 커피믹스-이거 캐나다에서 난리도 아니랍니다.  값싸고

편리한 커피의 혁명이라는 거죠-를 마셔버립니다.

 

 

일년 남짓되었나 봅니다.

드립커피의 세계에 입문하면서 진정한 커피의 맛을 깨우치게 된 때 말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을 통해서 생두를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모험을 시도해본 거죠.

좋다.

생두를 내가 볶아 보자.

몇 번 하다보면 길이 보이겠지... 라면서요.

다행이 나의 오랜 친구가 커피 매니어여서 그 친구를 믿는 구석도 좀 있엇지만요.

 

생두를 덜어서 일주일쯤 먹을 양만큼을 잘 볶아냅니다.

잘 볶아졌는지 아닌지는 색깔이 말해주는데 처음엔 육안으로 확인을 해야만 했었죠.

지금은 제법 경지에 올라 팝핑(왜, 팝콘 튀길 때 타타닥 거리는 소리 있죠)하는 소리를 듣고 로스팅의

정도를 가늠하기도 하니까요.

 

집안에서 참깨를 볶노라면 고소한 냄새가 집안 가득해 지는 거 아시죠?

마찬가지죠.

고소하게 피어오르는, 그리고 외투 사이까지 베어들어 여운을 남겨주는 커피냄새.

그냥 상상만 하시라구요.

 

잘 볶아진 원두는 냉각을 시켜 밀폐용기에 담아둡니다.

근데, 갓 볶은 커피보다는 하루 이틀 지난 커피가 제맛이 나기 시작한답니다.

적당히 잘 볶은 커피를 실온에 두면 커피속의 지방이 올라와  겉을 번들거리게 해주죠.

 

아침에 눈을 뜹니다.

사람 뿐 아니라 동물도 마찬가지지만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서운 것 같아요.

 

김유신(나는 이분이 우리의 옛 선조이지만 여간해서는 경칭이 안나오는 게, 외세를 등에 업고 삼국을

통일 시킴으로 외세가 우리 역사에 개입하는 실마리를 주었다는 점 때문이랍니다)의 말이 언제나처럼

술취한 주인을 모처로 태우고 갔다듯이 나는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전기포트의 스위치부터 올립니다.

 

물이 끓는동안 눈꼽을 부비고 기지개 한 번 켜고 밀폐용기를 엽니다.

그리고 코를 들이밀고 냄새를 빨아들이는 거죠.

같은 원두에서 어떤 날은 과일의 향이, 또 어떤 날은 쵸콜릿의 향이 느껴지는 게 참 재미있어요.

 

그리고 20그램의 커피를 핸드밀 속에 털어 넣습니다.

전기 그라인더나 믹서로 갈아보기도 했지만 커피는 역시 핸드밀에 갈아야 겠더라구요.

 

손잡이를 돌리면 손으로 커피가 갈리는 부드러운 촉감이 전해집니다.

그러면서 원두의 향이 피어오르기 시작합니다.

 

거름종이를 드립퍼에 맞게 접어서 커피를 털어 넣습니다.

온도계의 눈금이 87~90도 범위내 일때 커피 표면에 조심스럽게 물을 적셔줍니다.

 

물보다 비중이 훨씬 작은 커피와 커피에 함유된 지방이 결탁하면  물에 젖은 커피가루가

젖가슴처럼 봉긋 솟아오르게 됩니다.

 

일 이십초 정도?

약간의 뜸을 들인 후 조심스럽게 원을 그리며 물을 부어줍니다.

그러기 위해서 드립 주전자의 끝은 가늘고 긴 모양입니다.

 

서버에 거품을 일으키며 진한 커피가 쏟아져 내립니다.

이쯤 침을 한 번 꿀꺾 삼키게 됩니다. 저절로.

200 CC 정도가 추출되면 드립퍼를 들어내고 머그잔에 커피를 덜어냅니다.

 

첫 모금은 눈을 감고 마셔야 합니다.

첫모금이 중요하거든요.

 

내가 아직 강호에 명함을 내밀어도 좋을만큼의 고수가 아닌지라 가끔은 싱거운 커피를 만들어

버리기도 하죠.

그때는 속말로 확 깨게 됩니다.

 

버리긴 아깝고 마시긴 개떡같고.

그런 땐 조조의 훙내를 내게 됩니다.

"계륵..계륵.."하고 말이죠.. 헤헤

 

뭐, 카페인에 민감해서  커피를 마시면 가슴이 뛴다든지 잠이 오지 않는 분들에게는 하나도 재미없을 이야기.

커피를 좋아한다 해도 나처럼 드립 커피를 즐기시는 게 아니라면 조금은 지루한 이야기가 되겠지만요..

나는 이렇게 커피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하거든요..힛~

 

참..좋지 않은 소식 한가지 알려드릴께요.

커피가 성능좋은 이뇨제라는 거 아시죠?

커피 많이 마시면 화장실 열불나게 들랑거리게 됩니다.

(내가 화장실을 좀 가는 편인데 어디 아파서 그런 건 아닙니다요)

 

아시는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커피의 카페인은 몸에서 쉬~로 배출 될때 옥가락지 낀 물귀신처럼

칼슘을 끌어안고  남강으로 뛰어든다더군요.

지나친 커피는 골다공증의 위험이 있다는 거죠.

그러니 하루 너덧잔 이상 마시면 곤란하다는 거...

 

대신 나쁘지 않은 소식은 인스턴트 커피 한 잔과 신선한 원두커피 서너잔의 카페인 함량은 비슷하다는 것.

 

마지막으로 고백하는데요...

나는요.

 

 

커피가 나를 배신해도 나는 커피 배신 못합니다.

너무도 사랑하거든요.

 

마지막으로 꼬랑지 하나만 더...

 

복분자가 요강을 뒤집는다고 하잖습니까?

그거 왜 그러는 줄 아세요?

거시기 머냐 남자들 힘이 좋아져서라구요?

 

먹어보지 않아서 그 효험의 허와 실에 대해서는 말못하지만 확실한건요...

복분자가 커피보다 훨씬 우수한 이뇨제라는 겁니다.

 

이뇨제, 많이 먹으면 오줌발 굵어집니다!!

이뇨제 많이 먹거나 마시면 술도 확 깹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이거 쓰는 동안 오줌 마려워 죽는 줄 알았네요..]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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