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야생화 기행을 따라 나섰습니다.
미리 봄냄새를 맡고 싶기도 했고 사진으로 볼 때마다 가슴을 설레게 만들던 복수초를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어제보다 맑았지만 많이 쌀쌀한 날씨였습니다.
기행팀의 리더는 도심에서 심하게 그을린 폐를 청소하라고 팔당호 후미진 곳으로 우회하는 배려를 해주었고 응달진 팔당호 가장자리 군데군데를 덮고있는 살얼음이 봄의 향기는 조금 더 기다려 달라 말하고 있었습니다.
여유롭게 도착한 천마산 계곡을 따라 천천히 오르다 맨 먼저 푸른색을 낙엽 아래 숨기고 있는 앉은부채를 만났습니다.
자기를 드러내기 싫은가봅니다.
발견 된 앉은부채의 대부분은 바위틈에, 혹은 돌을 의지해 숨듯이 피어있습니다.
거기다 낙엽속에 몸을 숨기기까지 했습니다,
하마트면 밟을 뻔했던 두 포기를 덮고 있는 낙엽을 조심스럽게 걷어내 보았습니다.
아직은 활짝 웃을 때가 아니라고 살포시 속을 보여줍니다.
조금 더 아래쪽에 갓 솟아오른, 명함보다 크기가 작은세 촉의 여린 생명이 보였습니다.
아직도 열흘은 더 자라야 개화를 하게 될까요?
흉칙하게 망가진 모습입니다.
꽤 여러 촉의 몸통이 싹둑 베어져 있어 안타까웠지만 그것은 먹이에 주린 토끼나 고라니가 뜯어먹은 자국인듯 했는데 이 개체는 인위적으로 훼손된 모습이어서 울컥 치밀었습니다.
그림의 오른쪽 면이 예리한 칼로 베어져 있습니다.
꽃술까지 찍고 싶은 지나친 의욕으로 행위예술을 해놓았습니다.
누구는 주위에 덮인 낙엽을 치우는 것도 죄스러운 마음으로 하던데 말입니다.
하긴 잘생긴 야생화를 만나면 자신의 카메라에 담은 뒤 곧바로 짓이겨 버리거나 꽃대를 꺾어놓는 품격있는 예술가들에 비하면 그래도 애교스럽지만요.
나무 줄기를 치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해 자세히 보니 다래 넝쿨이었습니다.
다른 꽃 보지 말고 자기만 봐달라며 까치발을 들고 있는 '너도 바람꽃'입니다.
도도하게 활짝 피어올라 한껏 뽐을 냅니다.
3센티미터 밖에 되지 않는 키 작은 들꽃이지만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보입니다.
여리기만 합니다.
아직 햇볕에 익숙해지지 않은 뿌리며 줄기가 아직은 창백합니다.
해를 향해 웃어주어야 하지만 아직은 수줍어 몸을 꼬고 있습니다.
마치 17세 소녀처럼...
이미 적응을 마친 '너도 바람꽃'이지만 이제 막 꽃잎을 열기 시작한 녀석에 비하면 성숙한 여인입니다.
눈과 얼음을 뚫고 노란꽃으로 피어 오른 사진속에서 나를 설레이게 하던 복수초가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이번엔 31미리 링으로 교체해서 더 가까이 다가가봅니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초점창으로 들여다 보며 초점을 맞추는 동안 늘 그랬듯 피사체와 대화를 시작합니다.
너를 더 예쁘게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네가 움직일 수 있다면 고개를 살짝 돌려주면 참 좋을텐데.
네가 숨어있던 어둡고 차가운 땅속에서 어쩌면 그리도 봄을 잘 알아채고 고개를 내미는 거니?
반뼘도 안되는 사이를 두고 나란히 서있는 두 포기지만 왼쪽의 꽃에게만 눈길을 보내봅니다.
이 무슨 싹이라던가... 복수초인듯...
긴잠에서 깨어난 붉은 새싹도 봄향기를 진하게 풍기고
하루 나들이는 오래 남을 여운으로 마무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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