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는 이야기

덕유산 - 설천에서 향적까지

낮은담☆ 2009. 1. 10. 09:05

 

눈이 기대한만큼 덮여있지 않았습니다.
어설픈 설경은 오히려 삭막하기까지 했지만  죽은 후에도 천년 세월을 버텨왔다는
주목과 구상나무를 요모조모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덕유산을 찾은 의미는 있습니다.
  

지낸해의 그 감동속으로 다시 빠져보고 싶어 내달았고

아쉬움에 한차례 더 오르리라는 계획과 함께 발길을 돌렸야 했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체감 온도 영하15도의 칼바람이 의식되지 않을만큼...

 

 

반대편 곤돌라 안은 달콤하고 풋풋했지만 아무리 뛰어난 렌즈라 해도 애초의 투명함이 퇴색된 두 장의 아크릴 창 너머를

섬세하게 읽지는 못할 것입니다.

아주 짧은 순간 그들과 스쳤지만 내 입가엔 한동안 미소가 남아있었습니다.

 

 

 

 

산책에 가까운 산행중 유일했던 눈꽃이었습니다.

어쩌면 스키어들을 위해 연출해 놓은 인위적인 것이겠지만...

 

 

 

 

작년의 이곳은 두터운 눈으로 덮여 있었고 맨눈으로는 바로보지 못할만큼  햇살도 강렬했고 주말의 여유를

즐기려 몰려든 인파로 뒤엉켜 어수선하기만 했습니다.

 

 

 

 

스키어들도 한껏 여유를 즐기며 유유자적합니다.

 

 

 

 

뒤엉켜 무질서한 인파로 점령당했던 지난 겨울에는 한 그루의 나무를 느긋하게 관찰해볼 여지가 없었습니다.

촛점링을 돌리기라도 하면 열락없이 엉덩이며 옆구리를 건드리며 지나치는 등산객들 때문에.

 

 

 

 

지난 번 촬영한 같은 나무는 쾌청한 하늘의 진청색이 배경이었지만 오늘은 색감이 많이 다릅니다.

얼마나 더 오래 이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살아있는 구상나무는 하늘을 향한 잎의 배열이 대패로 다듬은듯 매끈합니다.

바람의 저항을 최대한 줄여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진화였겠죠.

 

 

 

 

그래도 겨울이면 예외없이 불어대는 북풍의 기세는 감당하기 어려웠겠지만 오랜 세월 버티어 오며

휘고 구부러진 모습으로 푸르름을 지켰을 것입니다.

마침내 고사에 이르게한 자연의 위세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자신이 생명체로 존재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해발 1,614미터의 향적봉이 한산하기만 합니다.

고지에 오른 감격을 나누고 싶은 걸까요?

마주서기 힘든 칼바람 앞에서 휴대전화 통화에 여념이 없는 사람, 사진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몇 사람조차 없었더라면

정말 삭막할뻔 했습니다.

 

 

 

 

몸통의 껍질이 벗겨지고 속이 헤집어졌지만 가지는 무성했습니다.

지난 겨울에는 보지못한 나무였습니다.

 

 

 

 

'여기도 신호등이 필요하다'는 흰소리가 나올만큼 붐비는 시장통 같던 이 길에 사람의 기척이

없습니다.

평일에 눈 소식이 들리면 득달같이 내려와야겠습니다.

계절 백수라고 동면만 해서야 되겠습니까?

 

 

 

 

눈으로 덮여있을 때의 두 그루는 보기에 좋았는데 오늘은 많이 칙칙합니다.

자연은 매번 다른 그림을 보게 해준다는 것을 깨달을 뿐입니다.

 

 

 

 

엔간한 나무가 저렇게 가지가 찢긴다면 비명을 지르며 죽어버렸음직 한데도 땅에 닿은 부분에서

향일성을 증명하는 치열한 반전이 있었습니다.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이길은 칼바람이 휘감아 오르는 곳이었습니다.

두 손을 꼭 잡고 서로의 체온을 나누지 않으면 이겨낼 수 없을만큼 위협적인...

두사람은 삶의 격랑도 너끈히 헤쳐나가는 동력을 공유하고 있을 것입니다.

 

 

 

 

운무에 뒤덮여 육안으로 바라볼 수 있는 태양을 White Disc라고 한답니다.

조리개를 조여서 창백한 기운을 빼봤습니다.

 

 

 

 

다시 설천봉입니다.

백련사 방향으로 내려가고도 싶었지만 너무 오래 느긋한 시간을 즐겨 시간도 넉넉치 않았고

혹한 속의 홀로 산행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산장과 휴게소 사이의 통로를 이동하는 연인들.

집으로 돌아가려는 발걸음처럼 총총거립니다.

 

땀에 젖은 몸이 서서히 한기를 느끼게했습니다.

몸이 가볍게 떨리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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