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간이 소나기 후드득거리는 주말이었습니다.
출사 계획이 없느냐는 나의 유혹을 기다렸다는듯 덥썩 나꿔챈, 흐린 하늘이 딱 좋다는 나의 벗과
하늘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삼각지의 명화원이라는 화교식당에서 만두를 곁들인 자장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지만 여늬때보다 길게 늘어진
줄에 질려 부근의 대구탕 잘한다고 이끄는 집으로 방향전환을 해야 했습니다.
두주불사, 청탁불문의 주걸(酒傑)인 30년 지기 나의 벗은 소주 한 잔으로 사흘을 버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나를
"내 지인으로는 유일하게 술을 못한다"고 구박을 하곤합니다.
하지만 내 삶속에서 친구라는 거룩한 칭호로 부를 수 있는 두 사람 중 하나이기에 그저 좋기만 합니다.
- 그러고 보니 나머지 한 친구의 타계 후 그새 십이지간을 한 번 돌았습니다.-
상암역 화장실 입구에서 읽은, 공공시설에서는 보기드문 유모어.
하늘공원 들머리의 허브 화단에 피어있는 세이지의 한 종류.
지난 봄까지도 보지 못했던 수세미와 꽃호박으로 만들어 놓은 터널.
좀 더 쌀쌀한 바람이 불면서 수세미 잎이 말라갈 때쯤 줄기의 밑둥을 잘라 빈 됫병에 꽂아놓으면
꾀많은 양의 우유처럼 뽀얀 수액이 모이게 됩니다.
얼굴을 닦은 후 스킨로션 대신 바르곤 했던 훌륭한 기초화장품으로 쓰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벌노랑나비가 드문드문피어있었습니다.
외부에서 유입된 흙으로 뒤덮인 난지도에 피는 야생화가 궁금해 봄에 찾았던 하늘공원은 허허로운 너른 들일 뿐,
민들레만 여기저기 왕성했고 드문드문 양지꽃이 피어있는 그저 빈터였습니다.
요트, 몇 척의 보트, 가지런히 정돈 된 텐트로 채워진 풍경도 봄과는 사뭇 다릅니다.
삼각대 없이 접사를 하겠다는 만용은 더 이상 부리지 말아야겠습니다.
꽤 너른 면적을 점령하고 있던' 꽃범의꼬리'입니다.
구절초? 쓱부쟁이?
뭐, 그런 종류려니 합니다.
애정행각에 여념이 없는 젊은친구들이 밉지 않았습니다.
풋풋한 향이 풍겼거든요.
별 기대없이 담았는데 나의 벗도 고개를 끄덕여주던 사진입니다.
꺾여진 줄기가 도연한 선비의 붓놀림에 춤추는 난 같습니다.
나의 30년지기가 촬영한 사진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하늘공원에서 내려와 그 친구의 후배들이 출연한다는 연극 오디언스를 관람하기 위해 홍대부근의 '떼아뜨르 추'를 찾았습니다.
체코의 대통령을 두 차례 역임하기도 한 바츨라프 하벨이 원작자였습니다.
한 시간 짜리 짧은 연극이었지만 몰입할 수 있었던 그런대로 괜찮은 작품이었습니다.
세장의 사진으로 합성한 상암경기장의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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