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다 갤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쨍하니 맑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다시 달마산으로 향했습니다.
정읍을 지날 무렵 빗발이 후둑거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빗길로 바뀌며 거북이 걸음이 시작됩니다.
그새 몇 건의 접촉사고가 있었던지 찌그러지고 구겨진 차 몇대가 길을 막았던 것입니다.
광주에 닿으니 거센 빗줄기가 시야를 가립니다.
두 시간 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해남에 닿았지만 빗줄기는 여전합니다.
터미널에 비치된 관광지도를 뽑아들긴 했지만 당장 갈곳이 없어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녹우당도 둘러보겠다는 집을 나설 때의 계획과는 달리 눈에 띄는 여관에 짐을 풀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갑자기 한기가 밀려들며 기운이 빠집니다.
욕조에 더운 물을 채워 몸을 푹 담궈보지만 으슬거리는 것이 영락없는 감기입니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불을 뒤집어 써보지만 깊이 잠들지 하고 대 여섯편의 영화를 찍었을 때쯤 알람이 울립니다.
새벽 네시 반.
다행이 비는 멎었습니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요기를 해보지만 제 입맛일리 없었습니다.
2만원으로 흥정을 마친 택시를 타고 5시 30분에 맞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헬기장까지는 평이한 길이지만 헬기장을 지나면서 가파라지기 시작합니다.
땀이 쏟아지면서 오한마저 느껴지는 게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되돌아 설 수도 없는 일.
쉬엄쉬엄 오르노라니 어느새 동이 트기 시작합니다.
거의 한 시간이 걸려서 달마봉에 올랐습니다.
운권(구름雲 말捲).
안개가 휘감기고 걷혀가는 모습을 운무가 두루마기처럼 감긴다 해서 운권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답니다.
정상의 바람은 차갑고 거셌습니다.
냉기가 뼈를 희롱하는 것이 느껴졌고 셔터를 누르는 손이 시렸습니다.
불과 몇 초 사이에도 안개가 덮였다 개었다하면서 눈앞의 풍경이 바뀌고 있었습니다.
이 그림과 아랫 그림은 불과 30초 간격으로 변한 광경입니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이 산에 다녀오게 될 것 같습니다.
마음은 단독 종주를 마치고 싶었지만 중간에 하산해버린 아쉬움이 너무 큽니다.
맑게 떠오르는 햇발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음도...
하산길에 들른 미황사의 대웅전입니다.
마침 솟아오른 햇살로 역광을 피해 앵글을 낮췄습니다.

그리고 미황사의 요사채.
그리고 미황사의 요사채.
30분이 넘도록 버스도 택시도 지나지 않는 길에서 담아본 달마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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