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는 이야기

분수속의 동심

낮은담☆ 2007. 8. 29. 21:50

일요일.
점심을 챙겨먹고 청계천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나들이길에 올랐습니다.

성급한 여름입니다.
햇살에 무방비로 드러난 도시가 이글거립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계절의 순환이 뒤엉켜가고 있습니다.

 

 

7월의 더위가 어림잡아 한 달은 빨리 들이대는 것 같습니다.
유리벽으로 빨려들어 간 건너편 건물 창에는 이글거리는 해가 걸렸습니다.

 

 

그새 사람들은 물과 그늘로 몰려들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눕니다.
발까지 담그고 환하게 웃는 걸로 보아 고향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참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눈이 아릴만큼 강한 햇살을 뚫고 잰걸음으로 내려간 시청앞은 솟구치는 분수와 동심이 어우러지고 있었고
물줄기 가까이 다가가니 냉기가 제법 풍겼습니다.

도시의 소음은 물소리와 아이들의 비명소리에 묻혀버렸고 차라리 정적을 느끼게 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몹시도 부러워하는 눈빛이면서도 뒤섞일 엄두는 내지 못하고 짐짓 점잔을 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물벼락을 맞는 것이 즐거운 유희입니다.
아침의 찬 기운이 물러가기 무섭게 강가로 달려가 점심도 굶어가며 종일 물놀이를 하던 때가 아득합니다.
해거름이 되어서야 허기에 지친, 빨갛고 퀭한 눈으로 터벅거리며 돌아가는 더꺼머리의 뒷 모습이 보입니다.

 

 

어린시절의 우리도 이 아이들처럼 티없이 맑은 웃음을 웃었겠죠?
때묻지 않은 얼굴.

우리 모두 이런 축복받은 시기를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지금이 삶의 가장 행복한 부분이라는 걸 아지 못하고 어른 흉내를 내려고 바둥거렸습니다.

 

 

한 사내가 딸을 품에 꼬옥 안고 분수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사납게 솟구치는 물이 무섭던 아이는 아빠에 대한 믿음으로 편안해집니다.

 

 

제 발로 분수속으로 뛰어들기엔 너무 어리다는 걸 자신도 알았나봅니다.
물 가까이 다가갔다 재빨리 아빠품으로 뛰어드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행복이 귀에 걸렸습니다.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는 엄마도 겉으로는 속상해 보이지만 행복하긴 마찬가지 아닐까요?

 

 

삼 사 십분 휘젓고 다니더니 이제는 지치나 봅니다.
아이가 엎드려 바닥에 고인 물에 기습적으로 입을 대더니 쪽쪽 소리가 나도록 물을 빨아들입니다.
몇 모금 마셨다고 탈나거나 죽지는 않을 터.
하는 양을 지켜보자니 웃음이 저절로 터집니다

 

 

"내가 너무 과격했었나봐. 빤쭈가 제 맘대로 꼬였어.."
꼬인 옷을 풀어보려던 아이는 젖은 옷이 제 맘대로 따라주지 않자 아래로 훌렁 내려버립니다.
앙증맞게 드러난 꼬추를 향해 렌즈를 디밀었지만 촛점을 맞추는 사이 중요한 건 다 가려버렸습니다.


분수는 50분 작동후 10분을 쉬었습니다.
그 50분 동안 같이 뛰어들어 적셔보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아이들과 같이한 하루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행복해 하던 아이들의 얼굴을 그리며 웃을 수 있었습니다.

 

 

                                                                                                                    2007. 0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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