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파도에 실린 열 송이 국화 [탈고]

낮은담☆ 2007. 8. 28. 23:47

파도에 실린 열 송이 국화 [탈고]

 

한줌으로 뭉친 원고지처럼 구겨진 차체 속에서

탈고되지 못한 너의 삶을 꺼내었다.

한 고리에 연결된 슬픔이지만 각기 다른,

나란히 놓인 세 컷의 정지화면왼쪽에서 너는

검은 리본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로 나하고 눈을 맞춘다.

 

며칠을 삼켜도 끝없는 설움이

갈라진 쇳소리로 울대를 타고 넘을 때

스물여덟에 공식적으로 고인이 돼버린

故전진은

어미에게 한을 남기고

피붙이들의 가슴을 헤집으며

故김종연, 故유명실의 뒤를 쫓아

장의차에 오른다.

 

10년만의 폭염도 녹이지 못한

차게 굳은 미소가

천여 도 불꽃의 고로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스테인리스 문에 갇힌다. 그리고

네가 남겨둔 이승을 에워싼 탐욕을 벗고

향나무 상자에 갇혀

남당리 앞바다로 실려간다.

 

네 아버지 자라던 그 바다는

어선에 실린 스물 네 개의 눈동자가 흘리는

눈물과 너의 뼈를 품어주다가

어느새 어깨를 들먹인다.

난데없는 슬픔에 고개 치켜든 어선이

눈물처럼 뿌리는 하얀 포말은 너를 위해 던져준

열 송이 국화를 삼켜버렸고

바다는 탈고되지 못한 너의 삶과

바다처럼 마르지 않을 어미의 슬픔을 안고

여전히 출렁거린다.

 

초고 2004년 8월 10일

 

탈고 2007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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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6일 세상을 등진 사랑하는 조카를 보내고 돌아온 날

애써 슬픔을 표현할 요량은 아니었지만

내가 그 아이를 많이도 사랑했던 만큼 흔적은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의 삶이 탈고되지 못한 체 마감되었듯 이 시도 탈고하지 못하고-내가 시에는 문외한이기도 하지만-

다시 읽어볼 자신이 없어 3년을 덮어두었다가 그 아이의 3주기 무렵임을 깨닫고 어설프게 탈고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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