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내게도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이 있다

낮은담☆ 2008. 1. 25. 07:23

그리운 친구 준기에게.

 

잊고싶은 무언가를 지울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더군.
이 새벽, 문지를수록 또렷이 박히는 스티커처럼 각인되어 지독한 그리움으로 남은 자
네를 그리워한다네.


여러해 동안 만나지 못하던 때에도 곁에 있는 듯 든든했던 것은 원하면 언제고 볼 수
있다는 사실때문이었어.


 

하지만 그렇게 든든하던 버팀목 하나가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는 상실감으로 퀭해진 마
음을 다스리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더군.

 

인간에 대한 신뢰를 거의 거두어 드릴뻔 했을만큼 처절하게 경험한 배신감 앞에 떨때
마다 자네를 향한 그리움은 치열해지기만 했었어.

 

10년전 12월 막바지의 어느날. 

아마 우리는  5년 여만의 상봉을 하고 있었지? 

 

일주일을 거의 뜬눈으로 지새우며 각자의 삶에 대해, 서로에 대해 참회하는 경건한 의식을
치루기도 했었어.

그중 한 밤, 피아골을 집어 삼킬 듯 울부짖던 바람소리에 '저소리는 처녀 귀신이 나를
부르는 소리야. 가서 위로를 해주어야 겠어.'라고 흰소리 치며 잇몸까지 드러내고 웃던

자네 얼굴이 너무도 아리네.

자네는 그말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었던거지? 

다음해, 단풍이 붉어지려던 10월의 저주 받은 날. 

더없이 따뜻하기만 하던 자네의 피를 칙칙한 아스팥트 위에 낙엽인양 흩어 버렸던 것은 말일세.

아, 나는 난생 처음 밤을 지새우며 훌쩍여야 했어.
그 뒤 줄곧 누군가가 아프게 할때면 자네가 사무치게 그리웠다네.

자네의 기억을 지우고 싶었던 까닭이기도 했지.
이웃들과 어쩔 수 없는 이해에 얽혀 적개심마저 미소로 포장하고 사는 게 힘들 때면
내 거짓과 가증스러움까지도 완벽하게 감싸주던 자네와 그들이 대비되곤 했으니 말일세.

 

이보게나.
이별은 정말이지 꿈도 꾸지 못하던 일이었어.
그분이 자네를 필요로 했음을 상상이나 했겠나 말야.

 

자네가 떠난 이태 뒤의 여름, 자네의 기일을 맞아 자네 피붙이들이라도 만나고 싶어 부산에

갔다가  헛걸음을 친 일이 있었어. 

 

광주로 이사를 했다는 말에 그만 주저앉아 울뻔했던 기억이 나는군.
영이란 놈도 제법 컷을거야.  해미는 이제 숙녀티가 날테고.

얼마전 광주를 다녀오는 길에도 자네는 나를 끈적하게 따라붙었지?

나는 말이지.
자네를 보낸 뒤 내 생전에는 친구를 만들지 않기로 작정을 했더라네.
수절과부의 심정으로 절개를 지킬테니 말이지 친구.
내게서 멀리 떠나주면 안되겠나?


내 힘으로는 자네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으니 하는 말이네.
그러나 나에게 주었던 사랑까지 거두지는 말아야 해.

 

훗날 내가 지옥불의 열기속에서 신음할 때, 아낙처럼 길고 하얗던 자네 손가락에 한방
울의 물을 찍어 내 혀를 적셔 주는 선심은 베풀어야 하지 않겠나?

 

제길헐.
왜 나는, 먼저 뒈져버린 자네에게 욕조차 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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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는 짐승의 기억력이라는 게 그런가보다.

좀처럼 떠날 것 같지 않던, 내 곁을 떠나버린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기억들은 어느새 망각속으로

부지런히 숨어들어버리지 않나 말이다.

 

그가 사무치게 그리워 남긴 끄적임.

그새 또 몇년인지의 세월이 흘렀다.

 

그가 떠난지 15년째? 아님 16년째? 더 이상?

10년 전?

엊그제의 일 같기도 하고.

 

이즈음은 그의 얼굴이 떠올라도 슬프지 않다는 게 슬프다.

가슴 멍멍한 아픔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도 정작 지금은 슬프지 않다는 게 슬프다.

그와 나의 거리, 이승과 저승간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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