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담 쥬니어>
아들아.
합격을 알려주는 네 전화를 받고나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교차하며 착잡한 기분이 드는구나.
너와 떨어져 살기 시작한지 벌써 칠 년, 그동안 끊임없이 네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해준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도 빗나가지 않고 반듯이 자라준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그건 아마, 너의 태생부터가 신의 축복 이어서겠지?
네 누나가 있을 뻔 했더란다.
그 아이가 8개월째 되던 어느 날, 네 엄마는 수혈을 해야 했을 만큼 지독한 하혈을 하기 시작했지.
한 시간을 달려 병원에 도착 했을 때 네 엄마의 혈압은 50 이하였고 몸은 싸늘해지고 있었다.
천만다행, 응급수술로 엄마의 생명은 구할 수 있었지만 네 누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더란다.
산도에서 너무 많은 피를 마셨고 뇌손상이 심각해 살려낸대도 사람 구실하기 힘들 거라고 의사가 말했지.
지금보다 훨씬 가난했던 아빠는 설사 그 아이를 살려낼 수 있다 해도 그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없어서
그만 산모만이라도 살려 달라고 말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일이 애비가 늘 죄책감속에 살게 만들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던 거야.
그리고 애비는, 또 같은 사고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소심함과 네 형 하나만 잘 기르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번식능력을 포기하게 되고 말았단다.
사람의 운명이란 누구도 아지 못한다는 게 실감이 나더구나.
애비가 씨 없는 수박이 된지 달포쯤 지났을까?
우물가에 앉아 꽥꽥 거리는 네 엄마를 보게 된 사건 말이다.
결론적으로 너는 이미 네 엄마 뱃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던 거야.
입덧이 너무 괴로웠던 네 엄마는 너를 지우겠다고 했지만 애비는 섭리를 거스르는 엄청난
범죄에 가담할 수 없었다.
너와 상견례를 할 때, 양 볼에 패인 보조개와 쌍꺼풀은 네가 영락없는 딸로 보여서 애비를 들뜨게 했지.
적어도 네 고추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딸을 그리도 갈망하던 애비의 마음을 읽었는지 너는 엔간한 딸만큼 붙임성 있었지.
정도 많고 애비의 팔베개를 하고 애비가 들려주는 동화를 들으면서 슬픈 대목에서는 눈물을 흘릴만큼
마음도 여렸어.
재작년이었지?
애비와 채팅을 하면서 졸업하면 특전사를 지망하겠다고 했던 게?
그때 애비는, 이놈이 사내가 다됐구나, 생각하며 애비가 특전사 출신임이 퍽 자랑스러웠었다.
그런데 일 년 후.
네가 신학교로 진로를 바꾸겠다는 말을 했을 때, 애비는 네가 선택한 길이니 존중 해주노라 고개는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왜 하필 신학교냐고 궁시렁 거렸더란다.
애비가 제대 후, 지나친 이상에 치우쳐 그 좋은 직장 팽개치고 시골에 묻혀 살겠노라 선언을 한 뒤 어느 날
신학 공부를 시작했던 기억이 씁쓸했기 때문이지.
그래, 애비는 현실과 이상의 부조화가 싫어서, 이면을 들여다 본 왜곡된 종교의 모습을 수용할 수 없어
일 년여 만에 뜻을 접어버렸던 거야.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애비의 고지식함이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네가 목회보다는 종교음악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거란다.
애비는 네가 목회자의 길을 걷는다는 걸 차마 상상조차 하기 싫구나.
애비가 느꼈던 갈등이 너에게 되풀이 되고 애비가 겪었던 좌절과 방황이 네 모습을 통해 반추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들아.
네 삶은 너의 몫일 수밖에 없지 않겠니?
애비가 너의 선택에 대해 뭐라 말을 하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네가 기뻐할 때, 좌절하고 표류할 때, 고뇌에 빠져 힘들어 할 때도 너는 여전히 나의
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네가 세상의 소금이 되든 또는 그 반대가 되든 내가 사랑 해줘야할 아들이라는 말이다.
아들아.
이제 네 세계를 향해 가라!
망망대해를 헤엄치며 때론 파도에 휩쓸려 방향을 잃기도, 때론 바위에 부딪혀 멍이 들기도, 다른
물고기에 먹히지 않으려고 처절한 생존 게임을 벌리기도, 잔잔한 수면에서 여유 있게 네 삶을
즐길 수도 있겠지만, 네 모습이 어떠하더라도 너는 여전히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듯 네 삶의 모습이
어떻더라도 너 또한 네 삶과 네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구나.
애비처럼 가끔씩 자기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바보가 되지 말라는 말이다.
너를 믿는다.
그리고 너를 사랑한다.
보고 싶구나, 아들아.
2004년 1월 16일 夫平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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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년이 지났다.
입대하는 아이를 생각하며 쓴 편지를 녀석이 4년간의 복무를 마치게되었는데도 아직 전해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냥 독백으로 남게 되어버렸다.
아이가 자랄수록 우리 사이의 간격은 그만큼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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