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그녀도 떠났다.
나는 때로 아주 사소한 것에도 집착을 한다.
이빠진 손톱깎이조차도 쉬 내팽개치지 못해서 몇 년씩 품고 있기 예사인지라
무엇 하나 없어진다는 게 곧바로 상실감 또는 공허함으로 이어지기 다반사이다 .
지난해 1월에 다녀온 에릭 클랩튼 내한공연의 티켓과 ( 그 이전의 멜라니 사프카가
포함된 디바3 티켓에) 지난 봄 밤열차로 다녀온 정동진행 무궁화표의 티켓까지도
아직 책상위에 나뒹굴게 할 만큼 버리는 것에 몹시 서툰 나로서는 말이다.
-그러니 한 번 마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월드컵이 열리기 전이었으니 그새 칠년쯤 되었던가?
우리의 연이 시작 된 때 말이다.
벌써 40중반을 넘어서는 나이로 그녀와 연을 맺는 일이
쉽지만은 많은 일이었다.
그때만해도 보수적인 편에 속하던 사회 분위기도 그랬지만
나 역시 튀는 행동에 익숙치 않았으니 뱃심의 지원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큰 아이는 입대를 했고
한참 정신적인 방황- 말하자면 정신적인 성장통을 앓던 작은아이와의
소통에 장애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느끼던 시점이었다.
나름대로는 아이들의 사고를 잘 이해한다고 믿었는데
오래 떨어져 살다보니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소통의 노이즈'를 막을
적절한 방법이 궁색하던 그런 시점...
신학대 진학을 생각하고 있던 아이와 그 의미를 알고 잘알기에 아이의 선택이
그리 마음 편치않던 둘 사이에 발생한 주파수의 혼선을 바로잡아야 했다.
나로서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실체적인 과감한 변신(?)이 절실해졌고 그때
등장하게 된 것이 '찢어진 청바지'와 피어싱이었다.
찢어진바지 위를 흝어대는 시선이야 민망스럽긴 했어도 그냥저냥 무시할 수 있었지만
며칠동안 욱신거리며 이물질의 존재를 알리는 귀의 신경세포는
공연한 짓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품게했었다.
하지만 작은 링 하나는 자칫 틈이 벌어질 수도 있었던 아이와 나를 결속시켜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해주기 시작했으니 결론은 참 잘했던 셈이다.
월드컵?
나는 그 사건이 우리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변화시킨 것중 우선 꼽아야 하는 것으로
서구식 자기표현에 방점 하나를 찍은 것이라고 판단한다.
보는 사람에게도 과단성을 요구할만큼 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한
탱크탑 따위의 낯선 의상도 등장했지만 당시의 분위기와 맞물려 거부감없이 수용하게
했던 흐름이 존재했었다.
튄다.
멋있다.
꼴불견이다.
사람들이 각각의 시각으로 내 행색을 촌평하는 사이 길들여져간 나는 면도를 할때나
한 번 귓바퀴에 대롱거리는 금속을 의식하게 되었다.
북한산에서 한눈을 팔며 잘난척 하는 사이에 제대로 넉장구리를 하고 말았다.
다치진 않았지만 그 시점이 내게는 새로운 전환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을 게다.
하산 후 식당에서 뒤늦게 내 몸의 일부가 그 순간에 증발해 버렸던 것을 알아챘으니.
부러지거나 찌그러져 바꾸는 일 아니면 거의 몸에서 떼어놓지 않았는데
갑자기 허전해진 귓바퀴가 오히려 어색할 지경이었다.
작년 여름에 찢어진 바지를 딱 두 번 밖에 입지 못했던 까닭은 갑자기 사람들의 시선을
따갑게 느끼기 시작한 탓이다.
염색을 끊고 밀가루 뒤집어 쓴듯 흰 머리 드러낸 나이로 속살까지 드러낸 다는 게
민망하더라는 말이다.
그래서...
어제밤엔 -어느 것을 집을까 알아맞춰 보세요...를 궁시렁 거리며 이참에 귀걸이를
졸업해야할지를 생각했다.
떠나는 것에 익숙해질 필요도 있으므로.
요즘, 일이 마땅치 않아 팔자에 없는 백수노릇을 하노라리 시간이 널널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
몇 일 더 궁시렁거리다 결론을 내야하지 않을까.
근데요...
아랫 그림이 좀 허전하긴 하죠?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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