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늘인 짧은 이야기

아버지의 오동나무

낮은담☆ 2008. 5. 15. 23:38

 

어느새 만개해 있었고 망원렌즈로 교환하고 몇 장 담으며 살펴보니 성급한 놈들은 그새 땅에 내려앉아

뒹굴고 있었다.

 

오동나무가 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까닭은 아버지께서 농처럼 흘리신 '작은소망' 하나 때문이다.

휴가를 나왔을 때 아버지께서는 집 주위에 몇 그루의 오동나무를 심어놓고 계셨다.

 

"어린 오동나무는 이른 봄마다 몸통을 잘라주어야 해.  그래야 속이 실해지니까. 그렇게 다섯번을 잘라줘야

한다고 오동나무라고 하는 거야."

외줄기로 올라온 가지를 잘라낸 자리에 빗물이 스미지 못하게 촛농을 부으며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물을 싫어하는지 몇 그루 냇가에  심은 나무들은 제대로 자라지 못해 베어내고 말았지만 대문옆에 심어둔 한 그루는

열심히 자라주었다.

 

당뇨가 있던 아버지는 이미 당신의 운명을 예견하고 있었던가보다.

동네 뒷산에 다녀오던 지인에게  담배를 권하며 담소를 나누던 아버지께서 그분에게 말을 건내셨다.

 

"임자 산에 나 들어갈 자리 한 평은 나눠 줄 거지?"

"아믄요. 드리다 마다요."

"기왕이믄 좋은 자리로."

"네. 볕 잘드는 곳으로요."

 

그러다 오동나무에 눈길을 보내던 그분이 말했다.

"참 곧게도 잘자랐네요."

"다섯 번을 베어줬으니까 속도 실해요.  오동나무는 딸을 낳으면 심었다가 출가할 때 베어서 장롱을 만들어 보내는

거라지만 내가 저 거 입고 갈 수 있을만큼 살 수 있을려나 몰라."

"90은 거뜬하실텐데 별 말씀을 다하시네요."

"사람의 운명이라는 걸 알 수가 있나?"

 

그냥 흘려 들었던 가벼운 담화를 진지하게 떠올리게 된 건 겨우 몇달 뒤였다.

여름을 나며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 당뇨는 결핵과 합병되면서 11월 30일 아버지를 영면하시게 만들었다.

 

아버지께서 그분의 땅에 묻히길 원하셨다는 생각에 그 약속을 떠올렸지만  그분은 다른 말을 했다.

오동나무 관을 입고 싶다던 말씀을 떠올렸지만 관으로 쓸만큼 자라지 못했거니와 관을 매장하지 않는 그 지방의

풍습으로는 공연한 수고라는 말에 그나마도 해드리지 못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15년동안 그 나무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었지만 마당안에 떨어지는 잎새조차도 쓰레기로

간주하는그 여자는 봄 가을을 끔찍해 했다.

봄엔 쏟아지는 꽃술이 지저분해서, 가을엔 떨어지는 낙엽이 원망스러워서.

 

결국 그 여자 손에 그 나무가 베어졌지만 우연히 오동나무와 마주칠 때마다 나는 늘 아버지를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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