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라져 가는 고개길을 따라 힘겹게 걷노라니 이미 노랗거나 붉게, 또는 갈색으로 변해버린 활엽수 사이에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눈에 익은 나무 몇 그루가 보인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맨 앞줄에 서서 봄을 알려주고 가을이면 노란꽃이 피었던 자리에대롱거리는 빨간 열매가 그리도 고와 산에 오를 적 마다 한 그루씩 울타리 곁으로 옮겨 심던, 아직 단단한 산수유의 열매를 만져본다.
아주 아주 오래 전, 논길을 걷다 제비꽃을 발견했다.
"야, 이 꽃 참 예쁘네."
"뭐? 다시 말해봐."
"응, 참 예쁜 꽃이라고."
한동안 말없이 내 얼굴을 바라보던 여자가 말했다.
"세상에, 자연에 대해 자기 생각을 말한게 처음이야. 우리가 만난지 2년만에. 난 너에게는 그런 감정이 없는줄 알았는데..."
다시 또 감정이 메말라가고 있다는 말일까?
며칠을 두고 걸었으면서 이 아침에 새삼스럽다니...
그제부터 따끔거리던 목구멍이 간밤을 설치게 하더니 오늘은 미열이 느껴진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음을 그렇게 느끼게 하는 아침었다. /11월 중순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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