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아져라, 더 낮아져라.
큰구슬봉이와 매우 흡사한 이 꽃은 키가 겨우 1센티미터 남짓한 아주 작은 꽃이다.
헤발 1088미터 망경대산 정상 헬기장에 한 두 포기씩 수 백송이가 무리지어 있었다.
단렌즈에 익스텐션 튜브를 끼우고 바짝 엎드려 촛점창 너머의 그녀들이 선명하게 보일 때까지
촛점링을 조금씩 돌리며 그녀들과 대화를 시작한다.
너희들 참 앙증맞구나.
내가 본 꽃중에서 너희들 키가 제일 작아.
나는 너희들을 제대로 보기 위해 이렇게 낮아지고 있어.
더 이상 낮아질 수 없이 바짝 엎드렸지만 나는 너를 여전히 내려다 보고 있구나.
"감동을 주려면 먼저 피사체에 감동을 받아야 해. 내가 왜 이 사진을 찍는지를 생각해야 하고."
내 친구 K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어느새 내게 전이된 탓이다.
너를 뭐라고 불러야 하지?
참 교묘한 곳에 숨어 있는 한 송이를 발견하고 담아왔는데 너를 부를 이름이 없어 아쉽다.
몇 무리가 앞서서 길을 떠난 빈자리가 허전하지는 않았다.
제가 가야할 길을 가고 있을터이니 말이다.
민들레는 하나같이 탈모증 환자처럼 윗부분의 씨앗부터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미풍에 흔들거리면서도 제 몸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씨앗 한올이 눈길을 끌었다.
손을 놓는 순간 새로운여행이 시작 될터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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