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
여름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려 놓은 전시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무꾼 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 들 있었으나, 석유 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것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칩칩스럽게 날아드는 파리 떼도 장난꾼 각다귀들도 귀찮다.
얼금뱅이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생원은 기어이 등업의 조선달을 낚구어 보았다.
그렇다.
이효석 선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도입부이다.
'한글2007'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오래 오래 전, 컴퓨터의 세계에서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워드 프로세서'아래아 한글 1.5'로
문서편집을 배우던 그 시절, 솔뫼 타법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자연습 프로그램을 어지간히 구동 시켰었다.
한참때 400타 수준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순전히 장문연습용으로 탑재된 '메밀꽃 필 무렵'과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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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다녀와야 겠다고 마음에 두었던 길.
야생화 기행팀에 얹혀서 마침내 다녀왔다.
관광지화가 되어버린 곳은 예외없이 풍기는 가공의 흔적을 봉평이라고 피할 수는 없었겠지만 흐드러진 메밀꽃의 화사함이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풍경을 조금은 누그러뜨렸다.
아, 물론 예기치 못한 야생화 몇 종류에 더 매료 되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이정표가 가르키는 대로 찾아간 이효석선생의 생가지는 이곳이 본디의 생가터라는 고증이 있었던지 선생의 탄신100주기 즈음해서 조성된 신축의 흔적이 여실했고 척박해 보이는 땅에서 자라는 메밀은 초라하기만 했다.
오래전엔 쉽게 볼 수 있던 친숙한 풍경이련만 낯설게 느껴졌던 까닭은 세월이 덧씌워지지 않은 깔끔함 때문이었다.
향유.
잎에서 향긋한 향을 풍겨주던 꽃.
삼각대를 펼치기 싫은 게으름은 접사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해바라기는 항상, 30년 전 그 친구가 자기 암실 벽에 그려 놓은 '해바라기'를 반추하게 한다.
오랫동안 생가지로 알려졌던 그곳의 메밀은 제법 무성해 실망감으로 다운될 뻔한 기분을 고조 시켜주었다.
가을냄새를 풍기는 푸른하늘을 향해 까치발을 한다.
꽃이 화려해지기 위해서는 비옥한 땅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내면의 충전을 외면한 겉매무새는 천박할 수 밖에 없다.
후미진 곳에 피어오른 꽃(서흥구절초)은 조촐한대로
무리지어 핀 꽃들은 또 그대로 보는 즐거움이 있다.
한송이 덩그라한 솔채꽃도
세 개의 익스탠션 튜브를 중첩해서 최대 배율로 확대해낸, 겨우 참깨알만한 병아리꽃도 다 제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어쨌거나 오늘 기행의 주목적은 물매화와의 상견례였다.
꽃대가 무르고 연약한 대부분의 습지식물 같지 않게 튼실하게 뻗쳐오른 물매화를 구도 �춰 담는 일은 난해하기만 했다.
내공의 허약함에 대한 변명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