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는 이야기

망우리에서

낮은담☆ 2008. 6. 1. 23:33

망우리 답사길에 오른다는 벗 K의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

이태 전 타계하신 스승 노촌선생님의 묘비를 세워드리기 위한 작업이 진행중이었던 거죠.

 

망우리.

가만 생각해보자니 깊은 철학적인 의미가 담긴 지명이었습니다.

 

忘憂.

근심을 잊을 수 있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루라도 마음 편하게 살도록 해주지 않는 요동치는 세상에서 훨훨 벗어날 수 있다니 그냥 한 달음에 내달려

볕이 조금 덜 드는 곳이라도 한 자리 차지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금계국이 초여름의 시계를 봄으로 돌려 놓으려는듯 화사합니다.

아예 망우리를 접수라도 할 기세로 여기저기 소담스럽게 피어있었습니다.

 

 

 

한 회원이 시인 박인환선생의 비문을 건탁합니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이십대 후반에 즐겨 웅얼거리던 목마와 숙녀의 앞부분을 겨우 기억해 냈습니다.

 

 

스물 다섯살때쯤이었던가요?

밤을 세워 이중섭전기를 읽으며 그분의 지독한 가난과 불운에 눈물을 그렁이던 일이...

 

헌화를 해보려 하지만 고개숙인 금계국의 무게중심이 자꾸만 뒤로 쏠립니다.

꽃이 앞으로 향하게 하고 싶었던 건 따지고 보니 보는 사람 입장일 뿐이었습니다.

꽃은 자기 얼굴을 선생께 보여드리고 싶었을 터인데 말이죠.

 

 

선생의 삶만큼이나 소박한 묘비에는 선생의 작품이 음각되어 있습니다.

어느 조각품 못지 않게 무게감 있으며 간결하고 아름다운 비석입니다.

 

 

올봄 이후, 너무 많은 야생화의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 넣으려 했던 표티가 납니다.

입안에서 뱅뱅 맴도는 그 이름...

 

 

 

당대의 문장가이신 만해 한용운선사의 묘비는 호태왕비의 필의를 살려 여초 김응현선생께서 쓰셨다는 걸 알았습니다.

 

 

 

동심은 신선의 그것과 같다는 말씀이겠죠?

예수처럼 서른 셋에 타계하신 소파 방정환선생께서도 이곳에 잠들고 계셨습니다.

 

 

 

 

주머니 속에 항상 사탕을 넣고 다니시면서 아이들을 만나면 나눠주곤 하셨다는 선생님의 묘역에도 어김없이

금계국이 기세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꽃보다  꽃망울을 둘러싸고 있는 가시가  눈길을 더 끌었습니다.

 

 

 

돌보는 이 없는 무덤인가봅니다.

아니면 떼가 잘 살지못하는 특별한 토양일 수도 있겠지만 잘 관리되고  주위의  다른 묘소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듯 하구요.

 

문인 최학송, 시인 박인환, 화가 이중섭,  독립운동가 서동일, 친일경찰 장택상, 죽산 조봉암, 위창 오세창,

소파 방정환, 지석영...  등등  당대를 풍미하던 분들의 묘소를 두루 돌아보았습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삶을 활활 불태우고 가셨을 그분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