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던 그
사람이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 뒤를 자주 돌아보게 된다던가?
회상에 빠져드는 일이 잦아지다보니 혼자 히죽거리고 혼자 얼굴 붉히는 빈도가 높아진다.
따뜻한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좀 더 유연했어야 했던 자신의 모습이 안타까워 탄식이 터지기도 하며 가끔은 야비해지기도 했던 모습에 화끈거리게 된다.
이러다 망령들지 싶다.
잃어버린 것이 꽤 많다.
정확히는 잃어버렸다기보다 지키지 못했다고 해야겠지만 애써 사람들에게 무덤덤하려고 했던 것이 보호본능 모드가 작동 되면서부터 차가워진 내 성격탓이긴 하지만 적극적으로 교류를 이어오지 못한 소심함이 스스로를 고립시켰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마음이 참 따뜻한 친구가 있었다.
프로그래머였던 그 친구는 유일한 취미가 클래식 기타 연주였을만큼 감성적인 사내였다.
어느날 홀연히 내 앞에서 사라진 그가 무척 보고싶어졌다
그 친구를 마지막 만났던 게 그새 10년 가깝다.
오래 된 수첩을 뒤졌다.
전화번호를 찾아내었지만 사용하지 않는 번호란다.
그 친구의 연락처를 알아내려면 혐오감때문에 기피해온 한 인간과 연락을 트면 가능한 일이지만 그래서 또 망설여진다.
전기 기타에 심취해 있던 큰 아들때문에 더 가까워진 그 친구의 아름다움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던 작은 사건이 있었다.
이미 IMF 직후의 내 힘에는 버거운 전기 기타를 우여곡절 끝에 지인의 도움을 받아 갖게 된 큰 아들은 클래식 기타도 갖고 싶어했다.
대놓고 사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들 엄마와의 인연을 끝낸 나로써는 큰 아들의 바램을 외면하기 어려워 그 친구에게 어지간한 기타의 시세를 물어보게 되었다.
이미 기타와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아이에게는 50만원 선의 기타를 쥐어주어야 오랜 기간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조언을 해줬다.
하지만 10년 전의 50만원이 어디 장난이었겠는가.
며칠을 고민하고 있을 때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마침 방학을 맞아 올라와 있던 큰아이를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그 친구가 살던 이천을 찾았다.
집 근처의 고깃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끌려들어간 그 친구의 집은 성격만큼 소박하고 깔끔하게 정돈 되어 있었다.
미리 챙겨두었던지 기타에 관련된 책과 비디오 자료 몇 가지를 챙겨주더니 클래식 기타를 들고 와서는 몇 가지 기법을 알려주며 아이에게 연주를 권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형, 그냥 편하게 받아줘요. 저 기타, 아이에게 선물하고 싶습니다."
편안하게 들릴리 없는 말이었다.
예기치 못한 그의 말에 아이도 연주를 멈췄고 나도 입을 벌린채 스톱모션이 되어버렸다.
"사실 내게 클래식 기타가 두 개가 있어요. 지금 쓰고 있는 것을 구하기 전에 쓰던 것이 이것인데 딸애에게 주려고 남겨두었네요."
"그럼 딸애에게 주시지 왜.."
그 친구의 딸은 국악학교에서 가야금을 배우는 중이었음을 익히 알고 있던터였다.
친구가 말을 이었다.
"그애는 내 욕심과는 달리 기타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그러니 그냥 필요로 하는 사람이 소중하게 다루는 게 더 낫지 싶어서요."
10년 전에 100여만원을 주고 구입했다는 악기를 사심없는 선물이라지만 선뜻 받아들이기는 부담이 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 손을 꼭 잡으며 내 귀에 속삭이듯 말하는 그 친구의 말에 나는 어설픈 자존심을 접어야 했다.
"이형, 내가 이 기타를 선물하고 싶어하는 것은 내 딸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기를 바래서입니다. 나는 내 딸의 또래들이 아름답게 자라야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이 기타가 형의 아이를 밝고 아름답게 자라도록 일조하리라 믿어요. 그만큼 세상도 아름다워지고..."
그 친구의 이상은 너무 높았고 그저 편안하게 올곧다고만 생각했던 친구의 인품에 무릎을 꿇었다.
내 딸이 아름다운 세상에 살게 하기 위해서는...
그날 이후 그 친구의 말은 늘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며 자신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물음을 던지곤 했다.
찬형.
당신이 참 그립습니다.
당신이 참 보고 싶습니다..
COLT였던가... 아들의 기타